지난 5년간 커피에 의존해서 하루를 보냈다. 하루 3~4잔, 많은 양은 아니지만, 코로나 걸렸을 때도 아픈 것만큼이나 커피를 못 마시는 게 힘들었다. 안 마시면 기분이 다운되거나 몹시 예민해졌는데, 놀랍게도 카페라떼 한 잔을 마시면, 내적 평화와 인류애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흘러나왔다.
작년 크리스마스 시즌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출근하면서 아내와 싸우고, 사무실 들어가기 전 카페라떼를 한 잔 마셨는데, 한 모금 하자마자 아내에게 사과 문자를 보낸 것이다.
역류성 식도염, 미란성 위염, 과민성 대장증후군이 있는데도 끊지 못했던 커피다. 담배보다 끊기가 50배는 더 어려웠지만, 어떻게 끊었고 유지하는지를 공개한다. 어떻게 커피를 끊었냐고? 먼저 감사했다. 커피를 완전히 끊은 내 모습에 대해” 그리고 나서 자유로워졌다.
에디터 P는 감사일기 108일차다. 큰 기대 없이 시작한 감사일기 쓰기, 작심삼일을 넘어 3주가 되고 3개월이 넘었다. 삶의 많은 부분이 바뀌었다. 이 글이 여러분 메일함에 담기는 날은 금연 9주차가 된다. 건강이 좋아졌다. 그 덕에 새벽 5~6시 기상도 한 달 넘게 성공하고 있다.
감사일기, 해빙 같은 것에 대해선 부정적이었다. “Having? 도대체 뭘 감사하란거야? “감사일기는 부자들이나 쓰는 거지. 거래처 사장님들, 월 1억 버는 분들은 더 돈돈 하며 목표지향적이던데?”
“그런 건 현실에 안주하는 사람들이나, 말기 암환자처럼 아무런 방법도 없는 사람들의 최후 수단이야”
“나도 타워팰리스 입주 전까진 안 쓸래.”
왜 그렇게 부정했을까? 그간 몇 번이나 감사일기를 시도했지만 잘 안 되었기 때문이리라. 의무감으로, 내용을 억지로 쥐어 짜내서 쓸 때, 남이 만든 형식에 맞춰서 쓸 때 정말 어려웠다. 싫어하는 과목 숙제하는 것처럼.
감사일기를 꾸준히 쓰는건 왜 어려울까? 크게는 2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 감사일기를 쓰면 금방 삶이 좋아질 것이라는 조급함
둘째, 경건하고 완벽하게 써야한다는 강박
독자 중에도 예전에 감사일기를 쓰다가 지금은 멈추신 분들이 있을 것이다. 운동이나 미라클 모닝처럼 힘들어서 그만 둔 건 아닐 것이다. 혹시, 생각한 것만큼의 효과가 없어서가 아니신지? 갓 100일을 넘겨보니, 감사일기의 효과는 매우 크지만, 가랑비에 옷 젖듯이 천천히 조금씩 다가온다.
독서, 다이어트, 공부 모두 급하게 뭘 하려고 하다가 요요가 오는 것 아닌가? 나도 성공과 행복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다양한 방법이 있고, 분명한 장점도 있고 힘든 점도 있다. 다이어트처럼 자기 계발 쪽도 요요가 심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아래는 모두 본인의 경험담이다.
마이너스 수면통장 - 며칠 새벽 기상 후 수면리듬이 깨짐, 그리고 몇 달간 늦잠.
독서 과부하 - 한달에 4~5권 정도 읽음, 책 내용 기억 안 남, 한동안 책과 담을 쌓음. 다시 책을 한 권씩 사다가 폭풍구매, 책이 쌓여가서 버리거나 장터 행.
강의중독 - 눈에 보이는 대로 강의를 듣거나, 충동 구매, 매일 강의를 들으면서도 새 강의를 찾아다님, 어느 날 지쳐서 아무 강의도 안 들음,
감사일기라고 이런 게 없었겠는가?
감사일기에 썼던 다짐대로 살지 못할 때도 많다. 어제 감사일기에 고맙다고 쓴 사람이, 오늘은 나를 가장 힘들게 하기도 한다. 머리 끝까지 화가 오른 상태에서 감사일기를 쓰는 날은 자기 연민과 혐오에 빠졌다.
‘쳇, 감사일기를 두 달 넘게 썼지만, 나는 여전히 구제 불능이구나’
도무지 감사일기를 쓸 마음 상태가 아닌 날도 몇 번 있었다. 다음 날 아침에 쓰곤 했다. 그리고 스스로를 달랜다.
‘지금은 감사하는 좋은 습관’을 만드는 중이야. 맘에도 없는 감사일기를 억지로 쓸 필요는 없어. 그래도 푹자고 일어난 다음날 아침에는 전날 못 쓴 감사일기를 쓸 수 있을 걸?’
3달이 지난 요즘은 그런 일이 없다. 속상한 마음이 들어도 잠 들기 전까지는, 그 마음이 진정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좋은 방법들은 많다. 그 중 부작용이 없고, 몸도 힘들지 않으면서 생활이 전체적으로 좋아지는 경험을 준 건 감사일기다. 나와 내 상황을 잘 알 수 있고, 습관으로 굳어지면 다른 좋은 습관을 들이는 것에도 커다란 자신감이 붙어서 최근엔 블로그와 카페 포스팅도 습관이 되어, 필력도 많이 늘었다. ‘일기’가 원래 그렇듯 꾸준히 쓰기 어렵다. 지속할 수 있었던 비법을 독자분들과 나누고 싶다.
그럼 시작한다.
1) 반말로 쓴다.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계속 감사일기에 쓰기엔 좀 권위적이고 때로는 종교적인 느낌도 든다. 또 아들이나 친구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감사합니다’로 쓰는 것은 어색하다.
영어로 땡큐 아닌가.. OO아 고맙다. ~해줘서 고마워 정도의 느낌으로 쓰면 부담이 없다. 이번에 감사일기를 다시 쓰면서 쓴 내용 일부를 공개한다.
고마워 ktx 지하철, 멋진 무료 와이파이
오늘 울산역까지 잘 데려다주신 어머니와 10년 된 자동차
어마어마어마어마하게 이뻤던 커피숍, 너는 내게 상상력을 키워줬어 고맙다.
2) 온라인에 써도 된다.
나는 네이버 카페에 썼다. 요즘은 종이나 펜이 없는 경우는 있어도, 웹에 접속이 안 되는 경우는 없다. 아이폰 메모나 에버노트 같은 개인적인 공간에 써도 좋고, 블로그나 트위터 등에 올려도 좋다.
내 경우 블로그에 쓰는 것은 맞지 않았다. 너무 공개적인 공간에 쓰면 부담이 될 수 있다. 네이버 블로그는 Linkedin의 명함 역할까지 하기 때문이다. 블로그나 인스타그램에 부계정을 만들어서 올리는 것을 추천한다. #감사일기로 21만개가 넘는 게시물이 인스타에서 검색된다.
3) 넘버링을 한다.
3일차 감사일기를 썼을 때 에디터 마드쏭님이 제안해준 방법이다.
“제목에 며칠째라고 쓰면 그 숫자가 처음엔 작아 보이지만, 그 숫자가 커지는 것에 뿌듯함도 느낀다”고 조언해주셨다.
그렇게 썼더니 정말로 100일 넘게 잘 쓰고 있다. 60일쯤 쌓이니, 이젠 의무감을 넘어 성취감이 느껴져서 절대 그만두고 싶지 않다. 4일차 쓴 감사일기엔 이렇게 적혀있다.
마드쏭님 댓글로 좋은 의견 계속 주셔서 감사해요.
숫자로 넘버링 하는 것도 적용했습니다. 004라니 작심삼일의 벽을 뚫어버렸네요.
4) 감사할 항목을 직접 정하고 템플릿대로 쓴다.
감사했던 사람이나 사건을 적는 게 일반적인데, 반복되는 일상의 연속이 계속된다면 좀 어렵다. 나의 경우는 유익하게 봤던 유튜브, 잘 사용한 물건이나 서비스, 오늘 만났던 행운, 기억에 남는 강의 내용이나 명언을 쓴다.
요즘은 ‘오늘의 유튜버’라는 부분으로 늘 감사일기를 시작하는 편이다. 나에게 영감과 감동을 줬던 영상을 공유한다. 감사일기에 쓸 정도로 좋았던 영상은 다른 분들과 공유하는 것이 좋겠단 생각에 링크까지 같이 올린다. 예전에 썼던 감사일기에 걸린 유튜브 썸네일만 봐도 ‘아 내가 이 땐 이런 것에 관심이 많았구나’를 바로 알 수 있어 좋다.
5) 나를 더 잘 알기 위한 별도의 일기장
평소에 일기를 안 쓰던 사람들이 감사일기를 쓰는 건 당연히 어렵다. 나도 며칠 일기를 쓰다가도 안 쓰면 몇 달간 전혀 쓰지 않는 편이다. 그래서 작년엔 간단한 일기를 시작했다. Q&A a day라는 책인데, 5년 동안 쓰는 한 줄 일기다. 그 중 몇 가지 질문을 공유한다.
좀 더 친해지고 싶은 사람이 있는가?
하루동안 초능력을 가질 수 있다면 어떤 것을 가지고 싶은가?
오스카 와일드는 세상에서 가장 재미있는 책은 자신의 일기장이라 여행 갈 때 꼭 챙겼다고 한다. 이런 질문들을 매일 만나고 짧게 답을 쓰다 보면, 내 마음이 얼마나 다채로운지, 세상은 얼마나 놀라운 것으로 가득차 있는지 알게 된다.
6) 낮에 쓴다.
감사일기는 밤에 쓴다는 편견은 스톱. 낮 혹은 새벽에 써도 좋다. 나는 밤에 쓰려고 미뤄뒀다가 다른 일정이 생기거나 체력 고갈로 못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음주나 과식한 날, 아이러니하게도 감사일기에 쓸 내용이 많은 날도 그랬다. 많이 쓸 생각에 몸이 먼저 부담을 느낀 것 같다.
이틀 연속 다음 날 아침에 감사 일기를 쓴 날, 이런 깨달음이 왔다.
"오전에 감사일기 쓰면 되는 거 아냐?"
오전이라도 감사할 내용은 분명 있을 것이다. 잠을 자고 일어났을 것이고, 아침도 먹었을 거다. 또 지난밤에 생각나지 않았던 좋은 생각도 떠오를 수 있다. 회사에서 점심 먹으러 가기 직전에 쓸 때가 정말 좋았다. 특히 시간 제한도 있다보니 핵심만 잘 요약해서 쓰는 연습도 된다.
7) 오늘 있었던 일을 적어보고 최고의 순간을 고른다.
감사일기를 며칠 쓰다보면, 잘 안 써지는 날이 온다. 며칠 채 감사일기 내용이 비슷해질 때 조금의 죄책감도 있다.
괜찮다. 감사한 일을 떠올리기는 어려워도, 오늘의 경험을 순서대로 하나씩 쓰는 건 쉬울 거다. 몇 가지를 쓴 다음, 그 중에 최고의 순간, 고마웠던 것을 찾아보면 된다.
마치며
나도 감사일기를 ‘목표’를 갖고 쓰지 않았다. 어렴풋이 ‘감사일기’ 꾸준히 써보면 좋을 거라 생각하고 다시 도전했다. 계속 써보면서 느낀 것은, 인생의 축소판인 하루 중에서 가장 정수(essence)를 추출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된다.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마음과 기억에 소중히 보관하는 의식이 된다. 가볍게 '반말'로 써보는 걸 추천한다. 변화는 천천히 반드시 찾아온다.
감사일기 쓰다가 궁금증이 생기거나 어려움이 있다면 아래 메일로 고민을 보내주시라. 에디터들이 답변을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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