싫어요, 생일 선물!
by 로사
생일날, 양주 딸네 집에서 점심을 먹고 집에 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쑥쑥 무탈하게 자라는 손주 수현이, 시훈이를 보고 있자니 흐뭇하고 대견했다. 태어난 지 10개월 만에 심장 수술을 했어도 잘 커 준 시훈이를 보면 그저 감사하다.
“시훈아! 너 참 멋지다. 어쩜 이렇게 잘 생겼니 울 손주. 그런데 할머니는 시훈이한테 생일 선물 받고 싶어”하고 이야기 하니, 중1 울 시훈이 고개를 푹 숙이며, “싫어요” 한다.
“응? 싫어? 어머! 얘, 내가 너를 만나면 용돈 주고, 네 생일날마다 봉투도 주었는데 싫어?”
하고 물으니, “몰라요” 하며 고개를 숙이고 바닥만 쳐다본다.
딸, 사위, 손녀 모두 나를 쳐다보며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다.
“시훈아, 그래도 할머니는 너한테 생일선물 받고 싶어!” 하니 아주 난감한 표정이다.
74살이나 되는 할머니가 중1 손주한테 선물 타령한 건가? 그래도 이건 아니지.
다음 해 2월 생일 며칠 전 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날을 잡아 아들, 딸, 가족과 점심을 먹기로 통화를 하고 시훈이를 바꾸어 주라고 했다.
“네! 할머니,”
“시훈아, 잘 있었니? 요즘 방학이지?”
“네.”
“시훈아, 할머니 시훈이한테 생일 선물 받고 싶어.”
시훈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시훈아, 할머니 시훈이한테 양말 세 켤레 선물 받고 싶어.”
“네~~”
시훈이 안도의 숨소리와 함께 대답한다. 아마 양말 세 켤레는 자기가 선물 할 수 있다고 생각해 대답한 것 같다.
“시훈아, 양말 세 켤레 알지?”
“네~” 목소리가 확 밝아졌다.
“시훈아, 수현이 누나 좀 바꿔줘.”
“수현아, 할머니 너한테 생일 선물 받고 싶어.”
“무엇인데요?”
“음, 뭔가 하면, 00집 제과점에 녹차 파운드케이크, 한 만원 조금 넘을 것 같은데 사 올 수 있니?”
“네, 할머니 사 올 수 있어요.”
야무진 수현이는 할머니 생각을 빨리 알아듣고 대답했다.
외손주 놈들 할머니 생일 선물 예약 통과다!
다음날 아들이 전화가 왔다.
“엄마, 누나네하고 점심 먹기로 했어요.”
“그래, 잘했다. 누나가 어제 이야기하더라, 그런데 나, 지유, 지호한테 생일 선물 받고 싶어”
“네?” 아들이 당황하면서 묻는다. “생일 선물이요?”
“그래, 생일 선물. 아이스크림 3개씩 받고 싶어.”
“아~ 네, 알았어요. 엄마. 지유, 지호한테 이야기할게요.”
그런데 생일날, 외손주 놈 들어오는데 빈손이다.
“시훈아, 할머니 선물 사왔니?” 깜짝 놀라며 제 엄마를 쳐다본다.
딸은 “잊어버렸지?” 시훈이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러면서 “엄마, 돈 빌려주세요.” 한다.
점심을 먹고 마트에 들러 시훈이에게 양말 세 켤레 선물로 받고, 애들은 케이크도 사왔다. 수현이는 녹차 파운드케이크를, 지유, 지호는 생일 카드와 1,000원짜리 아이스크림 3개씩을 사 들고 왔다.
시훈이가 사준 양말을 바꾸어 신으며 양말이 꼭 필요했는데 고맙다고, 친구 만날 때 꼭 신고 가서 자랑해야겠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가끔 녹차 파운드케이크가 먹고 싶었는데 혼자 사 먹기는 그랬는데, 잘 사 왔다고, 너희들이 오니까 나누어 먹을 수 있다고, 우리 지유, 지호가 써온 카드로 할머니를 행복하게 하고 바밤바, 누가바, 녹차바 아이스크림도 오랜만에 먹어 너무 좋고 손주들이 사 온 것이라 더 맛있다고 칭찬의 칭찬을 했더니 웃으며 좋아했다.
저녁을 먹고 딸네 가족이 간다고 나섰다. 수현이, 시훈이게 용돈을 주니 할머니 생신인데 용돈 안 주셔도 된다고 수현이가 받지 않겠다고 하는걸, 내년에도 더 좋은 것 사 오면 된다고 말하니 쑥스러운 표정으로 받았다.
가까이 사는 아들네는 주말 연속극 보고 9시에 간다고 나섰다. 현관에서 신발을 신고 있는 지유, 지호에게 세상에서 제일 예쁜 우리 손주들 용돈 주어야지 하며 만원짜리 한 장씩을 주니 고개를 옆으로 돌리며 손을 뒤로 뺀다.
“지유야, 왜 안 받아?”
지유가 몸을 뒤로 쏙 빼며 “할머니, 못 받아요.”
“왜? 왜 못 받아, 얼른 받아.”
“할머니, 나 미안해서 못 받아요.”
“뭐? 왜?”
“난 선물을 3,000원 주고 사 왔는데 할머니한테 만 원 용돈 받으면 미안하잖아요?”
“으하하하, 그래?”
어미, 아비, 할미 모두가 빵 터졌다.
“그렇게 삼천 원어치 사 오고 만원 받기 미안하겠구나.”
지유, 지호 고개를 끄덕끄덕한다.
“그렇지만 이건 우리 손주들이 할머니 선물도 사 오고 너무 기뻐서 주는 용돈이란다. 그리고 내년 4학년 때는 할머니 생일에 더 많이 사 오면 되지 않겠지?” 하니,
“네, 할머니.” 하면서 활짝 웃는다.
‘아이고, 귀여운 놈들’ 꼭 안아주고 보냈다.
왁자지껄했던 집안이 다시 조용해졌다. 손주들을 생각하면 슬그머니 웃음이 나온다. 조용히 앉아 ‘오늘 하루도 행복했구나!’ 하며 침대로 간다.
무탈하고 행복이 가득 채워지는 하루를 보냈음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