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순서]
1. 과거, 미래, 지금의 나를 만나다 - 마드쏭
2. 대학생 때 전 이러고 살았습니다^^ - 에디터P
3. 나라는 콘텐츠 어디서 찾나? - 러너
4. 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멋진 나를 만나고 싶다면? - 로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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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미래, 지금의 나를 만나다
by 마드쏭
□ 승진도 빨리하고 싶고, 노후도 준비하고 싶다.
□ 자격증이 10개 이상이지만 여전히 노후는 불안하다.
□ 퇴직 이후엔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을 하며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살고 싶다.
□ 직장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 함께 보내고 싶다.
독자님들에게 위 내용 중 하나라도 해당하는 것이 있으신가요?
위 내용은 20대 취직을 한 이후에도 제가 끊임없이 쉬지 않고 뭔가를 선택하고 행동하게 된 이유입니다. 직장에서도 인정받고 싶었고 엄마로서도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퇴직 이후 삶도 미리 준비해서 노후엔 건강과 부를 모두 갖춘 풍요로운 삶을 원했습니다.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원하는 것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4년 전의 저는 불안했고 지금은 평온합니다.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과거의 저는 A를 할지, B를 할지 항상 고민하고 둘 중 어느 것을 선택하여 성취하면 또 다른 C와 D 등을 놓고 무엇을 할지 고민했습니다. 그렇게 뭔가를 선택하고 집중하다가 그 일이 끝나면 다시 불안해져 다음 할 일들을 찾아 기웃거렸어요. 저를 가만히 쉬게 놔두지 못했습니다.
그때는 여러 선택지 중에서 결정 기준을 제 안에서 찾지 못했고 외부에서 찾았어요. 돈을 잘 벌거나 좀 더 편안한 일은 무엇인가, 미래에도 없어지지 않고 살아남을 직종인가,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것인가와 같은 것들이 선택의 기준이었습니다. 저만의 가치와 목적 없이 남의 인정, 부, 성공 같은 외부의 상황이 선택 기준이었습니다. 목적 없이 서울에 가겠다는 것과 같았어요. 막상 서울에 도착하면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불안해하며 또 다음 코스를 정하게 되지요. 그렇게 방황의 연속이었습니다.
이 흐름을 끊게 된 계기가 두 가지였습니다.
이리저리 흔들리는 것이 싫어서 ‘나’를 알고 나만의 중심을 잡겠다고 배운 에니어그램을 통해 ‘내 안에 답이 있다.’ 자신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첫 번째 계기였어요. 흔한 말이었지만 방황 끝에 들은 말이라 그런지 그제야 제 마음에 들어오더라고요. 그때부터 남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 않았어요. 남이 말하는 성공 기준, 남들이 옳다고 하는 것들을 좇아 불안해하는 대신에 제 마음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었습니다.
두 번째 계기는 남의 변화를 돕기 위해 배운 NLP 시간에 ‘지금 하는 것을 모두 내려놔라.’는 조언이었습니다. 그 말 덕분에 꾸준히 열심히 해야 한다는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꾸준히 열심히 했기 때문에 얻은 남의 인정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었습니다. 무엇을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아도 괜찮은’ 심리적 자유를 얻었지요. 매주 월요일 새벽 5시, 즐기며 했던 팟캐스트를 멈추었습니다. 2년 3개월 동안 좋아하는 팟캐스트에 갇혀 지냈음을 알게 되었어요. 한낱 팟캐스트일 뿐인데 그걸 멈춘다는 것이 제가 없어지는 것과 동일하게 느낄 정도였다는 것은 충격이었습니다. 자신과 동일시하던 것을 내려놓으면서 간접적으로 죽음의 체험을 한 것이지요. 마음이 텅 빈 것 같았지만 그 이후엔 어떤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었어요. 좋아하는 것과 나를 동일시한 것. 그래요. 그건 꾸준함이라고 불린 집착이었어요. 어느 정도 집착하지 않고는 위대함을 달성하기 어렵다는 말도 있지만 집착하기 전에 자기만의 가치와 방향을 정하는 것이 우선이었습니다.
이 두 가지는 제 변화의 시작이었습니다. A냐 B냐를 선택하기 바빴던 삶의 게임 속에서 한 걸음 물러나 이 게임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 삶의 의미를 찾기 시작한 것이지요. 그동안 살면서 어느 순간에 기쁨과 설렘을 느꼈는지 돌아봅니다.
자기 계발을 처음 시작할 때는 경제적, 시간적 자유를 원했어요. 그것을 직접 얻지는 못했지만 ‘내 안에 답이 있음’을 믿고 외부의 말에 덜 흔들리게 되면서 나름 마음이 편안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착, 남으로부터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로부터 자유로워지면서 더 큰 평온함을 누리게 되었어요. 이 평온함은 현재의 삶에 안주하게 만드는 게 아니었습니다. 현실이라는 게임 속에서 아바타로 살기 바빴던 저를 삶의 주인으로 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러고 나니 제 아이들도 저와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길 바라게 되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성공 기준에 이리저리 휩쓸리지 않고 자기만의 기준으로 자신을 믿고 사랑하며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습니다. 자기만의 가치와 목적을 가지고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삶을 살아가길 바랍니다. 제 아이들에게 바라는 마음은 제 가족뿐만 아니라 타인에게까지 확장되었습니다.
그 마음이 앞으로 타인에게까지 어떻게 확장할지는 더 고민하고 나눠볼게요. 다음 호도 기다려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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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때 전 이러고 살았습니다.
by 에디터P
나의 컨텐츠를 찾기 위해 과거를 돌아봅니다.
2020년 초부터 나이 앞자리수가 4로 바뀌었다. 직장인으로 회사만 다니는 건 직무 유기인 것 같아서 처음으로 '사업'을 준비했다. 물론 그전에도 이직을 위한 자격증 쌓기, 어학 공부도 했지만 서른여섯 정도를 넘기고 나서는 더 이상 이직은 어렵겠다는 생각을 했다. 이젠 거래처 사장님들 나이도 나와 비슷하거나 더 어린 분들이 보여서, 이제 이직은 어렵겠다는 현실 파악과 자기 객관화였다.
그래서 1인기업이 되기로 했다.
나는 어쩌다가 내 얘기를 하게 되었을까? 콘텐츠, 내 사업 아이템을 찾기 위해서다. 나는 유형의 상품을 팔지 않기 때문에 연예인도 아닌 주제에 내가 ‘상품’이자 ‘서비스’다. 즉 사장인 내가 서비스의 큰 요소를 담당하는 것이다. 주식으로 따지면 PER가 전혀 없는 날품팔이 사업이지만, 요즘은 ‘퍼스널 브랜딩’이라던가 ‘메신저’ 같은 기깔난 용어가 전국의 비루한 1인 기업가들의 어깨에 뽕을 채워주고 있다.
1인 기업이란 말도 참 웃기다. 그런데 나는 이미 2007년부터 김형환 교수님의 '1인 기업' 관련 cd를 사서 들으며 그 꿈을 키웠다. 아무리 직장을 다니더라도, 사람은 각자 자신을 경영하는 ceo인 것이다. 그리고 심지어 2001년에 다니엘 핑크가 쓴 <프리에이전트의 시대가 오고 있다>라는 시조새 격인 책도 있고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같은 국내에선 바이블처럼 여겨지는 책도 있다.
1인 기업의 핵심은 실력과 매력을 갖추어 자신의 진짜 고객을 찾아내고 모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중 ‘매력’과 ‘실력’은 제공하는 상품과 서비스에 따라 다르겠지만, 적어도 매력이 40% 이상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스토리가 중요한데, 나는 오늘 내 스토리 중 일부를 독자 여러분과 나눌 것이다.
에디터p는 화가 집안인 아버지와 과수원 집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할아버지, 아버지, 그리고 고모까지도 화가를 했으니, 내 속에 화가 같은 미적인 것에 끌리는 유전자가 있는 것은 분명하다. 또 과수원 집에서 태어나 농사를 하고, 초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던 어머니의 영향도 받았을 것 같다.
할아버지는 서당에서 훈장도 했다. 일제 강점기엔 글자를 모르는 사람들도 많던 시기인데, 한자를 했으니 나름 배운 집안이었던 거 같다. 그리고 주로 절의 탱화와 단청 등을 그리는 용역 서비스를 하는 화가셨다. 아버지도 한자의 중요성을 강조해서 나와 내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한자 공부를 했다. 그 영향으로, 나는 국방의 의무를 마치고 대학 2학년 1학기 복학 할 때 2005년 당시 전망이 좋았던 중국어학과로 전과한다.
어릴 때 사자성어를 100개 넘게 외웠다. 고진감래, 흥진비래, 회자정리 같은 인생 관련 용어도 배웠기에 중국어가 쉬울 줄 알았는데, 현대 중국어는 그런 사자성어와는 전혀 무관했다. 무협지는커녕 삼국지도 제대로 읽지 않아서 중국 역사와 문화는 너무도 멀게 느껴졌지만, 한자를 공부하는 것, 중국어의 운율을 즐기는 것은 재미있었다. 특히 같은 과 동기나 후배들보다 조금 더 중국어를 잘 해야겠다는 경쟁심이 중국어 공부에 큰 원동력이 되었다.
중국 유학도 갔지만, 여행은 거의 다니지 않았다. 집돌이 스타일은 아니지만, 요즘 사람들이 살고 있는 이곳 저곳을 자전거로 돌아다니면서 보는 것이 좋았지, 기차를 10시간 넘게 타고 가서, 또 한 두시간씩 걸으면서 수백년전 유적지를 보는 것은 내 취향과는 맞지 않았다.
그런 감상에 빠져 있을 시간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중국이란 무대를 보았는데, 거기서 내가 차지할 자리는 보이지 않았다. 중국어를 배우면 큰 시장에서 날개를 펼 수 있을 것 같았지만, 이미 중국에는 전국에서 온 한국인 유학생이 6만명 가까이 되었고, 한국어를 잘 하는 중국인들은 그보다도 훨씬 많았다.
'중국어나 중국문화를 배울게 아니라 비즈니스를 배워야겠어!'
임금 격차가 최소 6배 이상 나기 때문에, 나 같아도 중국어만 잘 하는 한국 대학 졸업자보다는 중국인을 뽑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귀국하자마자 경영학과를 복수 전공했다. 아무래도 중국어 하나만으로는 취업이 불리할 것 같아서였다. 우리 과에서는 내가 제일 먼저 스타트를 끊었다. 다른 과에서 전과를 와서 성적 우수장학금을 받은 녀석이 복수 전공한다는 소식이 전해졌고, 그 후 성적이 좀 좋은 후배들은 죄다 복수 전공을 하게 되어 전공 수업이 텅텅 비어버리는 일이 생겨서 규정까지 바뀌는 해프닝도 있었다.
대학 4학년 때부터는 1인 기업으로서 내가 잘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를 계속 고민했다. 그러다가 일반 회사 취업 대신 영어학원으로 취업했다. 이 역시 중국어 학원보다는 시장이 훨씬 크고, 상대적으로 '한국말도 잘 하는 중국인 근로자'와 몸값 경쟁을 덜 해도 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강사로 1년, 대형 프랜차이즈 지역관리 업무를 1년 하면서 학원 오픈의 꿈도 키워갔다.
2010년 봄, 어느 학원장님의 인생 조언으로 인해 그 업계도 나오게 된다.
학원도 성공적으로 잘 키우셨고, 돈도 잘 버시는 그 분을 멘토로 삼고 싶어서, 업무 외적으로도 몇 번 찾아가서 식사를 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이런 조언을 받았다.
"학원 하고 싶다메? 여긴 이제 좋은 시절 다 갔다."
"예?"
"예전보다 애를 안 낳는다."
"네, 저희 때보다 확실히 애들이 적지요."
"그리고, 부모들도 더 이상 사교육에 큰 돈 안 쓴다. 이 쪽보다는 다른 곳을 알아보면 좋겠다."
"....."
몇 달 전 일이 기억 났다. 2010년 2월 말, 교육청에서 발표한 울산의 초등학교 1학년 신입생 수는 꽤 충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학교는 1학년이 겨우 1개 반, 가장 많은 곳이 겨우 8학급에 불과했다. 내가 국민학교 1학년 때는 14학급이 넘었고, 그마저도 교실이 모자라서 오전반/오후반이 있었다. (어떤 달은 오후에 등교했었다.) 1981년에 출생아수는 86만명인데 이미 2003년부터 출생아수는 40만명대로 크게 꺾인 상태였다.
그 분의 조언이 없었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아마 작은 학원을 전전하고 있거나, 어렵사리 학원을 경영하고 있을 것이다. 인생에서 결정적 순간에 받았던 컨설팅으로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시간이다. 회사를 다니고 있지만, 계속해서 배움을 이어가는 것도 그런 감을 익히기 위해서다. 2016년엔 휴넷으로 마케팅MBA를 수료했고, 코로나로 세상이 바뀌고 있는 2020년에는 '1인 기업', '메신저 사업'에 대해 집중적으로 공부했다. (지금 연락하거나 만나는 사람들은 최근 4년간 자기계발하면서 알게 된 분들 뿐이다) 그리고 2021년부터는 고객분들의 마케팅 성과를 내는 것과 전략 결정을 돕는 일을 하고 있다. 교육과 코칭을 전문적으로 하기 위해 사업도 준비중이다.
자신의 커리어를 월급쟁이에서 끝내려고 하는 분들은 거의 없다. 나는 나와 비슷한 분들을 고객으로 모시고 싶다. 자신만의 사업 모델을 만들어서 독립하는 분들을 도울 것이다. 3년 넘게 각 분야 고수들을 만났고, 몇 달치 월급을 써가며 때로는 그 분들의 무급직원으로 어깨 넘어 배우기도 했다. '1인 사업'은 교과서처럼 공식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 하나는 배웠다. 우선 '나'라는 재료를 먼저 파악하고, 그에 맞는 요리를 기획하고 시장을 만드는 게 먼저라는 생각이며 이 가설이 맞는지 검증할 것이다.
재료를 파악하는데 콘텐츠 제작만한 것이 없다. 그리고 그 콘텐츠는 즉시 성과로 측정 가능하고, 쌓이면 나의 스토리와 이력이 되어준다. 매일 블로그 글 1개를 쓴지는 2달 정도 되었고, 조만간 팟캐스트도 오픈 예정이다. 나의 콘텐츠가 독자분들께 힌트가 되길 바라며 이번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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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는 콘텐츠 어디서 찾나?
by 러너
- 재정적으로 불안합니다. 오늘도 내일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해요
저는 어떻게 콘텐츠를 찾을 수 있을까요?
-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꿈도 있었고요. 그런데 하질 못했어요.
저는 어떻게 콘텐츠를 찾을 수 있을까요?
- 산다는 게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두려워요.
저는 어떻게 콘텐츠를 찾을 수 있을까요?
- 건강하지도 않고, 생존도 불안한데, 사람들은 자꾸 충고하고 조언하고, 평가하고, 판단해요. 저는 어떻게 콘텐츠를 찾을 수 있을까요?
- 직장은 다니고 안정된 삶을 살고 있어요. 그런데 너무 일에 치여 살아요. 주말에도 제 삶이 없는 거 같아요. 시간이 없어요. 삶에 재미와 의미가 없는데, 어떻게 저만의 콘텐츠를 찾죠?
당신이 세미나나 강의, 콘퍼런스에서 위와 같은 5가지 질문을 청중에게 받았다면 어떻게 대답하겠는가?
이번에 콘텐츠 관련 작가분들과 얘기를 하게 되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다시 돌아보게 된다. 요즘 ‘나’라는 주제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퍼스널 브랜딩에 이르는 모든 과정에는 ‘나의 이야기’가 들어있다. 또한 사람들은 ‘나’의 이야기, ‘너’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 ‘세상’의 이야기에 관심이 있다는 걸 보게 된다.
나는 대학에 늦게 들어간 만큼 배움에 대한 열정이 컸다. 어찌 보면 열등감에서 비롯된 지적 욕구에 대한 갈망이었다. 내가 모자란 만큼 채우겠다는 마음?
2000년부터 뭔가를 메모하고 끄적거리는 걸 계속했다. 하지만 2007년도에 도전한 대학생 연합 동아리에 합격하게 되면서(그때 당시는 서류전형 같은 것이 있었다. 무척 어려운 글쓰기 주제로 5가지 질문에 대해 500자 이내로 써야 했다.) 나는 조금의 자신감을 얻었다.
그리고 기자단, 기획단, 동문회, 대학생봉사단, 공모전, 인턴십, 워킹홀리데이, 동아리 조직, 번역 프로젝트 등 각종 여러 가지 일들에 도전했다. 나를 잘 몰라서 그러기도 했고, 스펙을 어느 정도 쌓아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건 내가 갖고 있던 생각을 깨뜨리는 행동이기도 했고, 예측할 수 없는 나를 발견하는 움직임이었다. 나의 가능성과 다양성을 인정하고, 더 알아보려는 좋은 시도이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얻은 건 내가 ‘교육’과 ‘봉사’에 대한 키워드를 발견한 것이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맞는지는 알아냈지만, 그래도 취업 준비는 잘 되었다고 보기 어려웠다. 하지만 프로젝트를 하게 되면서, 아는 회사의 대표와의 대화를 통해 벤처 회사에 들어가게 되는 행운 또는 고통을 얻게 된다.
번역 프로젝트를 하면서 글을 다시 쓰게 되고, 교육회사에서도 논문을 쓰고, 그 뒤로는 서평을 쓰고, 4만명 이상 되는 카페에서 칼럼을 쓰고, 블로그를 하고, 온라인마케팅 관련 회사의 제품을 홍보하는 글을 쓰게 되고, 생각해 보니, 2000년도부터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대로 시작한 건 2007년이었다. 2017년 나우 리슨 프로젝트를 할 때도 글을 써서 홍보 해야 했다.
2011년 이후로 내 시간은 정지당한 듯했다. 더 이상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없어서? 꿈에 다가갈 수가 없어서? 사람들의 관심과 위로와 격려를 채울 수 있는데 한계가 있다는 걸 어렴풋이 알았지만, 나는 계속 갈구하고 있었다. 2012년도에 봉사활동을 하고자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들의 이야기를 책으로 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발표했다. 카페도 만들고 같이 하자고 했지만, 반응은 별로 없었다.
당신이 당신만의 콘텐츠를 찾으려면 정말 지독하게 자기 자신을 성찰해야 한다. 따져봐야 한다. 뒤집기도 하고, 물어보기도 하고, 한발 물러서기도 하면서 자신의 위치를 제3자의 눈으로, 위에서 내가 어떠한 상태인지 내려다 봐야 한다. 그 위치를 알지 못하면, 나를 알지 못하면 고객도, 콘텐츠도, 사업도 꽝이 되어버린다.
자 다시 위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1. 재정적으로 불안합니다. - 경제력
2. 하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꿈도 있었고요. 그런데 하질 못했어요.
- 도전과 시작, 용기의 힘
3. 산다는 게 너무 우울하고 무기력하고, 두렵습니다.-감정의 힘
4. 건강하지도 않고, 생존도 불안한데, 사람들은 자꾸 충고하고 조언하고,평가하고, 판단합니다. -관계와 건강의 힘
5. 시간이 없어요. - 시간의 힘
오늘은 위의 5가지 중, 감정을 통해서 자신이 세상에서 할 일이 무엇인지 깨달은 보통 사람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한다.
어머니의 자살, 아빠의 중독 등으로 힘들었던 아밀리아 안토네티라는 여성이 있다. 그녀는 충격에 빠져 바닥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나침반 같은 외할머니의 말씀을 잊지 않았기에 다시 일어선다. 슬픈 기억 속에, 감정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은 그녀는, 홀로 서서 ‘정상적인 가정’을 갖기를 꿈꾼다. 좋은 남자와 결혼해 아기도 금방 생기는 행운(?)도 얻게 된다.
아이에게 데이비드란 이름을 지어주고 단란한 가정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하던 것도 잠시, 그녀의 집에는 아들, 데이비드의 비명에 가까운 울음 소리가 메아리치게 된다. 조그만 뾰루지 같은 것이 데이비드의 온몸에 나기 시작했는데, 병원이란 병원을 다 다녀보고 전문가에게도 물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그 누구도 그녀에게 속 시원한 대답을 못 해준 것이다. 그것은 데이비드나 엄마 두 사람에겐 고통이었다.
자,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이런 상황에서 결국 아이 때문에 아밀리아는 이혼까지 하게 된다. 그녀는 그래도 자신의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감정에 억눌리지 않는다. 아이를 살리겠다는 마음과, “설령 네 인생이 나락까지 떨어진다 해도 거기에서 무언가를 배우기 위해 노력하라.‘라는 외할머니의 말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데이비드를 데려가지 않는다면 무엇이든 하겠다고, 자신의 목숨이라도 바칠 수 있다고, 하느님에게 기도하기 시작한다.
지금 엄마가 된 사람이라면 이 심정이 어떤 건지 알 수 있을 거다. 자신의 행복과 아픔과 슬픔과 모든 것을 버리고 아이를 살리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할 수 있는 게 ‘엄마’라는 존재다.
그 유명한 일화가 있지 않던가? 자신을 버린 엄마 때문에 힘들어하는 아들이 있었다. 아들이 성년이 되어서 엄마를 만나러 가라고 한 양아빠는 말했다. 아들은 가기 싫었지만 아빠의 말에 순종해서 어느 마을의 다리 밑으로 가게 되었는데, 사람들로부터 뭉클한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떤 여자가 잘 데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데 아이를 데리고 이 다리 밑에 왔대. 그런데 점점 눈이 오더래.... 조금씩 눈이 쌓이고 추워지는데, 아이가 추워하니까 조금씩 옷을 벗었대. 그러다가 옷을 모두 벗고 실오라기도 안 걸치고 자신의 몸으로 아이 몸을 덮었다네. 그리고 그다음 날 아침 너무 추워서 얼어 죽었지 뭐야. 에구..’ 그 얘기를 들은 아들은 ‘어머니, 저를 정말 사랑하셨군요.’ 절규하며 감사하며 울었다고 한다.
어떤 이는 엄마가 먼저다. 엄마가 행복하고 내가 먼저여야 아이가 행복하고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맞다. 하지만 그건 반쪽짜리 엄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일화의 엄마처럼 자신을 희생해서 아들을 살린 엄마도 진짜 엄마라고 난 생각한다.
아무튼 다시 돌아와서, 아밀리아는 매일 일과를 기록하며 이상한 점이 있는지 알아보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매주 화요일이면 데이비드의 증세가 심해진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녀는 화요일마다 대청소를 하는데, 거기서 독성 물질이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각종 화학세제나 몸에 해로운 물질들을 모조리 버렸다. 데이비드의 몸은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다.
'아하! 그럼 아들을 위해서 비누를 만들자.' 그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녀는 곧바로 실행했다. 그 비누를 사람들과 나누기 시작했고, 금방 인기를 얻었다. 그 비누는 빨래뿐만 아니라 다양한 용도로 활용되었다, 바로 집안 청소에도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현재 아밀리아는 <아밀리아비누>의 설립자이자, 베스트셀러 《왜 데이비드는 화요일을 싫어했을까?》의 작가로서 사람들이 가족을 위해 보다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하는 사명을 가지고 살고 있다고 한다.
당신이 처한 상황에서 떠오른 감정과 그 이야기가 콘텐츠가 된다. 위의 이야기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힌트를 얻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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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상상하는 가장 멋진 나를 만나고 싶다면?
by 로이린
본업 외에 나만의 콘텐츠를 찾는다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안다. 그렇다고 지금 하는 일을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막막한 게 현실이다. 대안을 마련해 놓고 싶지만, 그것 또한 원하는 대로 되지 않으니 쉽지 않다.
새로운 길을 찾으려고 할 때마다 눈에 들어왔던 문장이 있다.
“우선 현재 하는 일에서 성공해 보라”
다른 곳으로 눈길을 돌리기 전에 먼저 현재의 위치해서 좋은 결과를 만들어 보는 것이다. 그러한 경험 데이터로 새로운 일에서도 자신 있게 움직일 수 있다. 나의 경우, 본업 그리고 본업에서 연결된 강의를 통해 나 혼자 일어설 힘을 배웠고, 자연스럽게 그 기회가 왔다.
강의를 시작하면서 일을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다. 강의 커리큘럼을 만들다 보니 업무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강의가 업그레이드됨과 동시에 업무 전문성이 올라가는 경험도 했다. 서로 시너지가 나는 것이다. 본업과 관련된 강의 외에도 제품심사를 하고 있다. 중소기업의 개발 제품들을 관찰하면서 상품성을 판단할 수 있는 견해가 넓어졌다. 내가 오히려 얻게 된 혜택이다.
그런데 여기서 만족할 수 있을까? 여전히 고민은 존재한다. 본업의 확장을 새로운 도전이라 말할 수 있을까? 당신도 같은 생각일 것이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갈증은 아직 해소되지 않았다. 본업 외의 대안을 준비하기 위해 비슷한 카테고리의 일을 펼치는 게 맞는지 의문이 든다. 부수입과 더 넓은 영역의 일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은 생겼지만, 새로운 분야에서 움직일 용기가 필요했다.
우선 작게라도 새로운 영역의 일을 넓히고자 마음먹었다. 그 첫 번째 시도가 독서 모임 운영, 두 번째 시도가 글쓰기이다. 독서 모임은 3년째 운영 중이고, 원씽브릿지 글 발행은 2년 차로 접어들었다. 위 두 가지는 내 마음속에서 꿈틀대던 취미로 시작된 것들이다. 그렇기에 지치지 않고 일상처럼 할 수 있다. 이 활동들이 나를 단단하게 함은 물론이고, 앞으로 더 멋진 활동들로 커져 나갈 것을 안다. 독서 모임은 지역 모임이 될 수 있고, 글쓰기 모임은 우리만의 플랫폼 사업으로 키워나갈 수 있다.
그럼에도 혼자 도약할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새로운 분야에서 잘할 수 있는 걸 찾기가 어렵다면, 내가 했던 일 중 힘들이지 않고 아이디어가 피어올랐던 일을 찾아보자. 나의 경우는 공간 사업이다. 공간에 관심이 많아서 새로운 카페나 분위기 좋은 식당을 찾아다니는 걸 좋아했다. 건축 수업을 듣기도 했고, 그리고 확신을 얻은 건 결혼 후 집 인테리어를 나만의 아이디어로 모두 완성했던 일이다. 자재며, 인테리어 소품 등 모든 것이 새롭게 어우러져 내 머릿속의 상상 속 공간이 현실로 구현되는 것에 엄청난 희열을 느꼈다. 공간에서 풍기는 분위기를 어떻게 하면 만들어 낼 수 있는지에 대한 아이디어도 많다. 레퍼런스들을 끊임없이 접하고 머릿속에 담았기 때문이다.
내가 하려는 사업은 커뮤니티 모임과도 시너지가 날 수 있다. 설레는 건 앞으로의 사업이 어떻게 연결될지 아무도 모른다는 점이다.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와,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연결되지?” 하는 경험이 있을 것이다. 내가 지식을 탐하고, 새로운 아이디어를 꿈꿀수록 그런 경험은 잦아졌다. 그 경험이 또 새로운 곳으로 나를 이끌고, 새로운 경험을 넓힌 나는 또 새로운 상상력을 피워낸다. 스스로 끌어온 길이 또다시 나를 이끌어 주는 경험. 그 경험을 당신도 꼭 해봤으면 한다.
사람은 나의 일이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예측하기 어려울 때, 그 일에 더 쉽게 몰입한다고 한다. 앞으로 만들어 나갈 미지의 영역에서 벅찬 감동을 느낄 그날을 꿈꾸며 몰입하고 또 몰입해 본다.
원씽브릿지의 구독자분과도 그러한 경험을 꼭 나눌 수 있는 자리를 만들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를 나눌 미래의 순간을 오늘 꿈꿔보는 거다. 당신도 나도 꿈꿀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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