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순서]
1. 불평만 하던 내가 삶에서 소음을 제거하고 나만의 길을 찾는 방법 - 에디터P
2. 말 한 마디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 러너
3. 다음 생은 없다! 이번 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 - 로이린
4. 네가 원하는 게 뭔데? - 마드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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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만 하던 내가 삶에서 소음을 제거하고 나만의 길을 찾는 방법
에디터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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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씽>이란 책에서는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만 남기고 다 버리라고 나옵니다. 원씽이란 책을 알기 20년 전에 인터넷에서 읽은 칭기즈 칸의 멋있는 글이 계속해서 제 마음에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늘 좋은 강연이나 책을 접하면, 항상 집에 가면 방 정리를 하고 물건들을 버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칭기즈 칸의 그 멋진 문장은 한국의 ‘수저계급론’을 반박하는 것과 동시에, 그 해법까지 제시합니다.
집안을 탓하지 마라. 나는 아홉 살에 아버지를 잃고 마을에서 쫓겨났다. 가난을 탓하지 마라. 나는 들쥐를 잡아먹으며 연명했고 목숨을 건 전쟁이 일터라고 생각하며 살았다. 막막하고 답답한 현실을 탓하지 마라. 나는 목에 칼을 쓰고 탈출을 했고, 얼굴에 화살을 맞고도 살아났다. 적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안에 있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나를 극복하는 그 순간 나는 칭기즈칸이 되었다.
여기서 저를 매료시킨 문장은 이 부분입니다. “나는 내게 거추장스러운 것은 깡그리 쓸어버렸다.” 칭기즈 칸처럼 부족사회든, 현대를 살아가는 사무직 노동자들이나 운동 선수, 예술인 누구에게나 이 말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생택쥐페리가 말했던 “디자이너에게 완벽함이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상태이다.”와도 이어지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많은 부분을 삶에서 빼보았습니다. 관계도 정리하고, 단톡방도 나오고, 물건들도 많이 갖다 버렸습니다. 그리고 지난 50일 넘게 이 문제만 고민해본 결과 저는 답을 찾았고, 그것을 여러분들께 나누고 싶습니다.
저는 제 삶에 불만이 많았습니다. 지난 글에서 회사의 매출이 단기간에 6배 올랐다고 했었죠? 저는 영업직도, 주주도 아니라 소득은 1도 오르지 않았고, 일만 더 늘었습니다. 회사가 적자이던 시절에도 시간이 부족해서 늘 야근을 했고, 주말과 휴일에도 고객들의 전화와 카톡에 시달리지요. 서버장애나 포털사이트의 정책 변화가 있지 않을까 늘 안절부절 못했습니다. 그 결과 5분도 안 되어 휴대폰을 확인하였고, 그렇게 주의력이 다 빠져 나가니, 퇴근할 때쯤엔 완전히 탈진되어 감정 조절이 안 되니 집에서는 폭군이 되어 자주 화를 냈습니다. 그나마 제가 온화할 시간은 돈과 시간을 벌어주거나 몸값을 높이는 방법을 배우는 강의를 듣는 시간이었습니다.
원하는 자원(시간, 체력, 경제력, 자유-결정력)이 부족하며, 이것을 늘리면 제가 원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시간을 절약하고, 운동을 하고, 재테크와 N잡을 통해 돈을 더 벌고, 독서와 글쓰기로 의사결정력을 높여서 삶의 제한들을 뛰어넘어 누구에게도 간섭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삶의 의미도 찾고 자유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아마도 대다수의 한국 직장인들이 바라는 모습이겠지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저 역시 문제가 닥쳤을 때, 손실 회피를 우선으로 행동을 한다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습니다. 시험이 두 달 남았을 땐 공부를 안 하다가, 두 시간만 남았을 때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해서 책의 내용을 외우는 것과 비슷하죠.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10대 및 20대 초반에 했어야 할, 자신의 진로와 삶의 목표를 그리는 것을 40대가 되어서 처자식이 있는 상태에서 하려고 하니 힘들었던 것입니다. 한반도 역사상 최고의 초호황시대를 사는 저는 남는 시간과 돈을 어디에 쓸지 몰라 방황하고, 시간을 낭비하면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해야할 무언가를 찾지 못한 것에 대한 죄책감과 답답함의 탓을 외부로 돌렸습니다. 부족한 자원(시간, 공간, 자원, 건강, 자유)이죠. (이걸 어떻게 깨달았는지는 뒤에 더 설명하겠습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첫째, 내 삶이 힘든 것은 모두 내가 자초한 것이다. 누구도 원망하지 않는다.
둘째, 자원과 기회는 이미 넘치도록 받았다. 내 선조들은 대부분 전쟁을 경험했고, 위생은 커녕 생존 자체를 늘 고민했다. 폭염에도 시원한 방에 누워 전세계 오락 거리를 보는 호사는 상상 조차 못 했다.
셋째, 지금 자원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내 삶을 어떻게 그릴지에 대해서 정하지 않았고, 남들이 사는 대로 살며, 나의 고유한 가치와 목적지를 잊어버리고 살면서 ‘자원’ 만 늘릴 헛된 질문을 했던 것이다.
넷째, 내가 어디로 가야할지를 스스로 정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 목적지가 있어야 그것에 맞게 내 자원과 환경을 활용할 수 있다. 목적지 없는 배를 위한 순풍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섯째, 그 목적지를 생각하려고 했으나, 나의 상상력을 오랫동안 억압시키며 살아왔고, 그것에 대한 혜택을 보면서 살았기에 이제는 의도적으로 외부와의 고립 상황을 만들고, 상상력을 극대화시켜야 한다.
<프로젝트 칭기즈칸>
그래서 지난 50일 동안 제가 원하는 것,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제 생활에 있던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쓸어버리고 있습니다. 오늘 여러분이 읽고 계신 글은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앞으로 자신만의 원씽을 찾고 싶은 분들에게 두 권의 책과 제가 썼던 방법을 나눕니다.
첫 번째는 저널링입니다. 원하는 것과 그것을 이룰 방법을 수시로 종이에 쓰는 것입니다. 당장 답이 안 나올 때는 종이에 질문을 몇 번씩 꾹꾹 눌러쓰기도 했습니다. “내가 진짜로 진짜로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리고 일주일이나 한 달마다 그것들을 읽고, 지난 글에 대한 셀프 피드백도 했습니다. 50일동안은 손으로만 썼지만,
이것만으로 자신의 원씽을 찾는 분들도 있으리라 믿습니다. 저의 경우에는 두 번째 것이 필수였습니다.
두 번째는 외부 정보를 극단적으로 차단하기입니다. 사실 저널링만 31일 했지만, 큰 효과를 보지는 못 했습니다. 외부 정보를 끊는 것은 황은정 님의 책 <무빙세일>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생각이라는 것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복잡하게 만드는 모든 것들을 거부했다. 무엇이 되었건 내 속에는 더 들어갈 공간이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내 머리의 스위치를 꺼버렸다. 우선 쥐새끼들을 몰아내야 했다. 그렇게 몇 개월이 지나자 먹잇감을 찾지 못한 쥐새끼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다.
- 황은정의 <무빙세일>중에서
저널링을 50일이나 했지만 왜 변화가 없었을까요?(원하는 것을 종이에 쓰면서 답을 찾는 것) 여전히 예전과 똑같이 인터넷 웹서핑을 하고, 중고 장터에서 시간을 보냈으며, 주말에는 쉰다는 핑계로 유튜브를 몇 시간씩 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내가 tv를 켜놨으니, 친밀감과 공감대 형성을 핑계로 예능 프로를 몇 시간씩 같이 보기도 했습니다. 회사가 어렵고 바쁘면 바쁜대로, 몸이 아프면 아픈대로 합리화를 하면서 웹서핑, 예능시청과 웹드라마와 유튜브 보는걸 계속 했습니다.
인터넷 공간에선 특정 사건이 사회문제나 정파간의 쟁점, 누군가를 미워해야 할 이유로 바뀝니다. 이 세상이 공정하지도, 안전하지도 못하며, 세상 모든 것을 의심하게끔 만드는 부작용도 있어서 뉴스도 안 보았습니다. 일간지, 유튜브와 인터넷 커뮤니티를 모두 안 봐야만 가능한 것이었고, 인터넷 커뮤니티 글이나 유튜브 영상을 1개 볼 때마다 100원의 벌금을 내기로 원씽 에디터님들과 약속하고, 벌금을 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유튜브 쇼츠 중독이던 제가 15일째 1개도 안 보는데 성공하고, 지금은 제 인생에만 집중하는 시간을 점차 늘리고 있습니다.
유튜브나 인터넷 게시물을 안 보는 것은 참 어려울 것입니다. 특히 업무상 필요한 정보가 담긴 블로그 글이나 유튜브 링크를 받을 때도 있기 때문이죠. 그런 경우에도 전부 100원씩 벌금을 내면서, 인터넷 의존도를 계속 줄여나갔습니다.
새로운 책 1권 읽을 때마다 권당 천원의 벌금을 내기로 정했습니다. 새로운 책은 나의 길을 찾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자기 합리화를 하기 쉬워서 일부러 가장 비싸게 정했습니다. 과연 효과가 있었습니다. 만약 인터넷웹서핑 뉴스, 신문만 차단했다면, 저는 그 동안 엄청나게 많은 책의 바다에서 익사했을지도 모릅니다. 대신 재독했습니다. 읽었을 땐 좋았지만, 실천하지 않아 다 잊어버린 책들을 꺼냈습니다. 또 예전에 썼던 글을 다시 읽으며 저의 목적지를 찾기 위해 지금 해야할 일과, 거절해야할 일들을 나누는 기준도 세웠습니다.
밤에는 자기 전에 30분씩 글을 쓰면서 저의 내면의 소리를 들었습니다. 또 그것을 녹음하면서, 글을 쓸 때 미처 생각하지 못한 내용까지 나오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언변 좋은 유튜버들은 어쩜 저렇게 자신의 생각을 논리적이면서도 유쾌하게 잘 표현할까 하고 부러워했었는데, 조금씩 저의 논리와 센스력이 올라가는 것을 느낀 것입니다. 또한 가끔은 머리를 맞은 듯한 깨달음도 찾아옵니다. 외부정보를 차단한 4일차에 저는 두 가지 깨달음을 얻었어서 글을 썼고, 그 글을 재구성해서 여러분들과 나눕니다.
첫째는 제가 목적지도 없이 순풍만을 바란다는 것이었으며, 두 번째는 제가 스스로 미래에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상상할 능력을 스스로 거세한 채 살아왔다는 것이었습니다.
“배가 가야할 방향이 정해져 있지 않다면 아무리 순풍이 불어도 의미가 없다.” - <알면서도 알지 못하는 것들> 김승호 저
상상력을 늘리기 위해서 저는 삶을 더 단순화, 규칙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살던 고시원도 정리하고 집으로 들어왔으며, 너무 많은 IT기기는 필요한 것만 최소로 남기고 한 달동안 쓰지 않게끔 옷장과 이불장에 숨겨두었습니다.
고영성, 신영준 작가의 책 <일취월장>에서는 혁신과 창의성을 위해 결핍과 한계상황을 활용하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몇 개의 건반이 고장난 피아노를 수리할 시간도 없이 연주를 해야하는 상황에서, 창의성을 발휘해서 최고의 공연을 해낸 사례도 나옵니다. 시험 기간이 두 달 남았을 때보다 두 시간 남았을 때 공부하는 것과도 비슷한데, 시간만 부족한 것이 아니라, 건강이나 공간, 재료가 부족할 때 예전에 생각해내지 못했던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낼 계기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제가 20대 전에 이런 삶의 고민을 하지 않았던 것도 시간과 건강이 너무 풍족했기 때문이죠.
결국, 인생은 시간 관리
이제 삶에 원하는 것을 찾으시는 원씽 브릿지 독자님들께 드릴 조언은 하나입니다. 수시로, 그리고 하루에 한 번은 반드시 시간을 정하셔서 스스로 원하는 것과 가고 싶은 곳을 상상하고 글로 쓰는 것입니다. 그렇게 찾은 원씽을 이루기 위해, 앞으로 남은 시간을 어떻게 가진 자원, 공간, 체력과 연결할지를 결정하고 행동하면 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번에 의사결정하면서 버려야할 관계와 잡일들에 대해 가이드가 되어준 소중한 책에서 좋았던 문장을 소개하며 글을 마칩니다.
시간은 우리가 유일무이하게 가진, 누구에게나 공평한 자산이며, 동시에 가장 소중한 자산이다. 시간을 얼마나 생산적으로 사용하느냐가 우리가 성공을 하느냐 하지 못하느냐를 결정짓는다. 개인적인 성공, 재정적인 성공, 사업장의 성공, 이 모든 것에 한 가지의 비밀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시간의 사용, 오용 혹은 남용이었다. - 댄 케네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추천 도서 2권
<그대 스스로를 고용하라> 구본형
<시간 흡혈귀를 퇴치하는 유쾌한 방법> 댄 케네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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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한 마디로 누군가를 따뜻하게 안아줄 수 있다면
러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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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아는 형을 통해서 22년에 공동체의 여자아이가 잠을 자다가 21살 꽃다운 나이로 원인도 모른 채 숨졌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무척이나 건강한 아이였다고 한다. 큰 병에 걸리거나 아프지도 않았다고 한다. 아, 어쩌다가 그런 걸까? 그 아이의 동생을 그 형이 돌보고 있었는데, 누나의 사망과 함께 큰 충격을 받고 제대로 삶을 살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21살이라고? 그 엄마는 아프지 않은 채 삶을 살아가고 있었지만, 아니 어쩌면 간신히 버티고 있었다는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누가 자신이 사랑하는 자녀를 21살의 나이로 보내고 싶을까? 내 딸이라고 해도 뭐라고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힘든 사람들에게 우린 어떤 위로를 전할 수 있을까?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만질 수 있을까?
21살이라면, 친구들도 사귀고, 여러 수업도 듣고, 전공 수업에 매진하며, 엠티며, 여행이며, 어학연수며 한창 꿈을 꾸고 뭔가를 해 볼 나이다. 아르바이트에서부터 공모전, 연애도 할 수 있고, 실패하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자신을 찾고, 나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펼칠 나이인데 어쩌다 원인도 알지 못한 채... 갑자기 가 버린 것일까? 자식을 잃은 사람들에게 ‘할 수 있어요. 이겨낼 수 있어요’라는 말은 너무 잔인한 것 같다.
이럴 때, 정신과를 찾아가면 괜찮을까? 어찌할 수 없는 트라우마에 빠진 이가 구할 것은 전문가일까? 그들이 나라는 존재에 주목하고, 깊이 이해하고 내 마음을 알아줄까? 아이를 잃고 영혼이 갈갈이 찢겨나가는 고통 가운데 있는 환자에게, 자신의 고통을 질병으로만 바라보는 의사와 전문가가 과연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을까?
30년 이상 트라우마 현장에서 일하셨던 의사의 얘기를 들었다. 재난 현장이나 참사 가운데 있는 사람, 부모에겐 특히나 심리 치유 전문가나 정신과 의사들이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이 피해자들의 고통과 아픔의 소리를 제대로 듣기 전에, 그들을 환자로 보고 칼을 휘두르기 때문이다.
상처받거나 아파하는 이들에겐 공통으로 바라는 것이 있다. 자신의 아픈 몸이나 상처받은 마음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 주길 원한다. 자신의 끔찍한 고통을 진지하게 바라봐 주고 깊이 이해하고 알아줄 것이라고 기대한다는 것이다.
이명수 님은 아래와 같은 상황을 들어 공감하는 게 무엇인지 간접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초등학생 아이가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혼나고 와서 자신의 아픔을 얘기했을 때,
엄마가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떨까?
“그러지마.”
아이는 울면서 말한다.
“엄마는 그러면 안 되지. 내가 왜 그랬는지 물어봐야지. 내 편이어야지, 내게 물어봐야지.”
아파하고 상처로 고통 받는 이에게, 제발 이렇게 한 번 말해 보자.
당신이 그 사람을 다 이해할 순 없겠지만, 그래도 그 고통을 이해하고 싶다고, 관심을 갖고 있다고, 나는 당신의 마음을 안다는 말투로 말이다. 따뜻하고 부드럽게, 당신이 그 사람의 마음의 결에 손을 대듯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왜 그렇게 된 거에요?
어쩌다 그랬니?”
내가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조급함을 내려놓고 물어보기 시작하라.
“지금 마음이 어떠세요?”
“아픈 게 도대체 어느 정도인 거니?”
“도대체 얼마나 힘든 건가요?”
재난이나 참사 현장에 온 자원활동가들이 피해자에게 위로가 되고 힘을 준다는 말이 있다. 24시간 동안 전문가가 피해자들을 돌볼 수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아무 것도 모른다고, 어떻게 할 말이 없다고 하며, 피해자들과 함께 있는 자원활동가들의 행동과 눈빛이 그들을 위로한다. ‘당신은 혼자가 아니다’라는 느낌을 준다. 자신의 생생한 체험과 깨달음에서 나오는 그들의 행동은 굉장한 힘과 위력을 발휘한다. 누군가는 당신의 지지와 위로와 격려를 무척이나 바라고 있을 것이다. 아니 함께 하길 바랄지도 모른다.
그에게 세심하고 자상한 지지를 보낼 수 있는 그 한 사람이 기다려진다. 그 한 사람을 세상에서는 찾기가 참 힘들다. 전문가도 트라우마를 고치지 못한다면, 그들의 존재가 도움이 안 된다면,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그 사람이 내가 되면 어떨까?'
나는 계속 이해 받지 못하고 공감 받지 못하는 현실 속에서 다시 마음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과 경청이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으며, 혁신의 핵심임을 보게 되었다. 그리고 말에 대한 중요성을 느끼게 되면서, 예쁘고 따뜻한 위로의 말을 고민하게 되었다. 왠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말 한 마디로, 그 사람을 안아줄 수 있다면? 따뜻하게 품어줄 수 있다면?’ 뭔가 그런 말들은 없을까? 미안하게도 나는 아직 그걸 다 찾지 못했다.
다만 MBTI중 F성향을 가진 이가 공감과 경청을 잘 하며, 따뜻한 말을 해 줄 수 있다는 1가지를 알았을 뿐이다. 혹시 여러분 중 누군가 다른 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따뜻한 말을 안다면 나에게 알려주면 좋겠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위로해 주어 살려낸 경험이 있다면 여러분은 치유자다. 당신이 그 한 사람이 되면 좋겠다. 누군가에게 당신은 그 한 사람이고, 사람을 살리는 세상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여러분의 위로하는 그 말들이 나 자신 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을 살려낼 거라 믿기에 도움을 요청한다. 이제 어떤 미래학자의 말대로 ‘공감의 시대’ 가 정말로 온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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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생은 없다! 이번 생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로이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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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태세계, 텐트 밖은 유럽, 두발로 티켓팅 등 각양각색의 여행 프로가 TV를 점령했다. 인도, 노르웨이, 뉴질랜드, 평소에는 쉽게 가볼 수 없는 곳인데, '나도 이번 생에 가볼 수 있을까?'라며 고개를 기울여 본다.
아는 선배가 외국에서 조만간 1년 살기를 할 예정이라며 소식을 전했다. 부부가 육아휴직을 내고 유럽에 가서 여행도 실컷 하고, 언제 한번 해보겠나 싶은 외국 생활에 도전해 볼 생각이란다. 이 선배는 히말라야 등반도 하고, 아프리카 여행도 다녀올 만큼 즐거운 일들을 벌이고 남들에겐 큰 도전도 곧 잘 해내는 사람이다.
그 선배를 보면 특징이 있다. 일단 조급해 하지 않는다. 여유가 느껴지고, 모험이라고 너무 긴장하지도 너무 힘주지 않는다. 마치 3박 4일 제주도나 일본 여행을 갈 때와 비슷한 마음가짐처럼. 여행 자체의 즐거움을 온전히 누릴 뿐이다.
선배의 흥미로운 플랜에 덩달아 여행 주머니에 설렘 바람이 가득 들어찼다.
'나에게 그런 새로운 도전은 뭐가 있을까? 생각지도 못했던 플랜을 만들어 본다면?'
다음 날, 그게 뭔지 생각이 떠올랐다.
'마음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던 설레는 플랜이 하나 있었지.'
남편에겐 이미 두, 세 차례 이야기를 꺼내본 적이 있다.
생각난 김에 슬며시 또 이야기를 꺼내 본다.
"여보, 나 아르헨티나는 언젠가 꼭 가보고 싶어!"
"에이, 거긴 너무 위험해서... 그래 가, 대신 다음 생에!"
"......?응?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서 가라고???"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꼭 가보고 싶은 여행지다.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로망이 생긴 계기는 이렇다. 대학생 시절 디자인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에 제법 빠져있을 때였다. 잡지를 훑어보다가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소개하는 글이 나왔다. 그 당시 글엔 디자인 하우스가 많다고 했는데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굉장히 매력적인 도시임에는 분명했다. 게다가 가장 좋아하는 날씨인 가을 기온이 연중 이어진다니, 이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여긴 무조건 내가 가봐야 하는 곳이다!' 잡지 글을 오려서 보관까지 해놓았던 기억이 난다.
'산텔모 시장에 가서 멋진 빈티지 소품도 하나 사고, 벼룩시장에서 마테차 잔과 빨대도 사야지,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서점이라는 엘 아테네오 서점은 무조건 가야지, 거기서 잘은 몰라도 스페인어로 된 책도 한 권 사고 말이지, 춤과 음악을 좋아하는 내게 탱고 공연 역시 빠질 수 없지, 땅고! 20대 때 읽었던 <탱고 레슨>책에서 봤던 그 춤 말이야.'
그러고 보면 나라에 대한 동경은 언어의 배움으로 이어진다. 영어, 중국어를 배우고 그다음은 에스파냐어를 배워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분명 아르헨티나에 대한 동경이 있었기 때문이다. 잠깐 여담을 하자면 그 나라의 언어를 배우는 순간,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는 출발점이 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면 항상 그렇게 느꼈다. 프랑스어를 배울 때는 그들의 숫자 표현법의 복잡함에 놀라면서도, 20진법을 사용했던 역사를 떠올리게 된다. 그 착한 순환의 과정들이 참 좋다. 좋은 에너지에서 비롯된 경험의 연결고리라는 의미에서 착한 순환고리가 생각한다.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항공편은 여전히 직항이 없다. 산 넘고 바다 너머의 연속이다. 경유가 필수다 보니, 비행기 안에 있는 시간만 쳐도 기본 23시간이다. 대학생 때는 이틀은 잡아야 한다고 들었는데 그나마 빨라진 건가도 싶다. '미국을 경유하니, 이참에 아메리카대륙도 한번 밟아보자고!' 설레발도 쳐본다.
설레발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코로나가 사실상 종결되면서, 세계 간 연결은 더욱 가깝고 유연해졌다. 최근 들어 해외 바이어들과의 다이렉트 미팅이 많아졌고, 그동안 거래하지 않았던 먼 국가와의 생산도 쉽게 성사가 되고 있기에 더 그렇게 느낀다. 그만큼 생각의 전환이 커졌다. 작은 변화를 할 바에야, 아예 새로운 방식으로 큰 변화가 벌어지는 게 더 낫다는 생각이다.
그 어떤 미래에는 해외 거래처가 유럽이나 미국이 될지 또는 남미가 될지 누가 알겠는가?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상상 그 이상”으로 변화할 테니 말이다. 업무지, 주거지의 형태가 달라지고 업무의 형식이 변화의 큰바람에 이끌려 그야말로 혁신을 해나가는 세상이다. 또 모른다. 워라밸이 더 중요시되면, 유럽처럼 한 달 휴가를 가게 되는 날이 올지도 모르니 말이다.
아직 이번 생엔 글렀다고 단념하기엔 이르다. 다음 생이 아닌, 이번 생에 꼭 아르헨티나에서 글을 쓰며 소식을 전하겠다. 남미 크루즈 여행을 꿈꾸며! VIVA LA VIDA!
*VIVA LA VIDA : 스페인어로 "인생이여, 만세"라는 뜻. Coldplay라는 영국밴드의 2000년대 대표곡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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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20년 가을 주말 오전. 오늘은 낮부터 저녁까지 강의다. 요즘 거의 매일 밤 강의 듣느라 바쁘다. 효과적인 책 읽기를 위한 독서법에서부터 성과를 내는 바인더 쓰기, 사람들에게 영향력을 줄 수 있는 1인기업 메신저 되기, 책 쓰기, 인스타그램·블로그·유튜브·오픈채팅방 같은 SNS 채널 활용법 등 강의 종류도 다양하다. 그게 뭐든 배우는 시간은 참 즐겁다.
그런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걸까?' 1년 전 휴직을 계획하고는 체험단으로나마 소소하게 생활에 보탬이 되고 싶어 시작했던 블로그였는데 어느 순간 배움의 늪에 빠져버렸다. 돈을 벌어 생활에 보탬이 되기는커녕 무료 강의에서부터 시작된 수업들이 작게는 1만 원에서부터 몇십만 원, 백 단위가 넘어가게 되었다. 뚜렷한 방향도 없이 막연히 도움 될 것 같은 강의를 닥치는 대로 듣고 있던 나. 잘 하고 있는 걸까? 이대로 괜찮을까?
직장에 얽매인 삶 말고 경제적·시간적으로 자유롭고 풍요롭게 잘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남들 말 따라, 미래의 풍요로운 삶에 도움 될 것 같은 수업을 밤마다 듣기 바빴다. 그리고 수업 들은 것을 하나씩 적용해보느라 새벽엔 유튜브 방송, 블로그 포스팅 등으로 잠도 충분히 자지 못해 의자에 앉아서 조는 시간도 많았다. 낮엔 낮대로 아이들과 보내느라 눈 밑 다크서클은 짙어만 갔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자 하는 목표도 없이 잘 나가는 강사들 말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통장의 잔액만 줄어갔다. 구체적인 계획도 없이 남의 주머니만 채워주는 호구가 된 것 같아 마음은 불편하고 미래가 보이지 않아 불안했다.
목표 없이 문어발식으로 방황하면서도 최소 1~2년 넘게 매일 지속되던 블로그 포스팅, 유튜브·팟캐스트 새벽방송, 건강·에니어그램 독서 모임, 감사일기 등으로 사람들로부터 꾸준함에 대한 인정과 칭찬을 받고, 쌓여가는 콘텐츠를 보는 것이 즐겁기는 했다. 어릴 적 막연히 해보고 싶었던 방송도 직접 경험하고, 내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며 글과 말로 정리하는 시간이 좋았다. 그러나 지속됨의 목적지를 알 수 없음은 여전히 내 행동의 당위성에 의문을 품게 했다.
38년 가까이 남으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삶을 살았다. 타인의 인정이 나의 디딤돌인 줄 알았다. 그것이 전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지만, 다른 방향에서 보면 타인의 인정은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데 장애물이 되기도 했다. 남으로부터 인정받지 못할까 봐 정작 자신을 위한 삶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지 못하게 하고, 생각하더라도 그러한 삶의 방향을 정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타인의 인정 여부가 삶의 기준이 되니 무엇을 해도 불안했다. 그렇게 불안하고 방황하는 것이 힘들어서 ‘나’에 관해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에 관해 공부하면서 내 성격이 어떻게 형성된 것인지, 살면서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며 살았는지, 무엇을 좋아하고 어떤 것들을 싫어하는지 알게 되었다. 더 나아가 인생의 답은 책이나 타인이 아닌 내 안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삶의 방향과 목적을 ‘밖’이 아닌 ‘안’에서 찾으면서 매 순간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불안해하지 않게 되었다.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 속에서 배움을 얻으며 내가 삶의 주인으로서 살면 되는 거였다.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소중하게 여기길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대해주기를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함께 있을 때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애덤 스미스 원저| 러셀 로버츠 지음
이 글을 쓰기 직전, 2020년 6월 컴퓨터에 저장된 것을 검색한 것도 아닌데 우연히 발견했다. 내가 저장했다는 것을 기억조차 못 하고 있었다. 그때의 나라면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이후 부분이 마음에 와닿았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은 첫 부분,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갖기를’ 부분이 더 와닿는다. 원래의 글에선 다른 사람들이 그러하다는 의미로 쓰였더라도 나는 ‘내가’ 나를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신에게 관심 두기를 바란다는 의미로 느껴진다.
다른 사람의 영향을 전혀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내가 나를 아끼면 남이 나를 힘들게 하는 순간에도 나를 일으켜 세우는 원동력으로 만들 수 있다. 나도 항상 남의 관심과 인정만 받고 살아온 것은 아니다. 그러나 타인의 말 한마디로 자존심에 상처 입어도 그것은 나를 더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문제는 ‘남’이 아니다. 타인의 무관심과 핀잔도 그것을 내가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따라 나를 위한 삶을 사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그 힘은 내가 나를 인정하고 사랑하는 것에서 나온다.
유튜브, 오디오 방송 등이 수익화를 할 만큼 구독자가 늘지 않아도, 명확한 방향과 주제도 없이 채널들을 운영한다며 질책받아도 그 시간 동안 ‘나’의 다양한 감정과 생각들을 경험했다. 2년 3개월간 매주 월요일 새벽 업로드했던 오디오 방송처럼, 내가 좋아서 시작했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마치 ‘나’인 것 마냥 동일시되는 것을 경험했다. 그것을 그만둔다는 것이 마치 내가 없어지는 것 같은 어처구니없는 감정도 느꼈다. 이제는 무의식적인 습관대로 혹은 타인의 인정을 잃고 싶지 않은 욕심으로 뭔가를 지속하지 않는다. 그것은 경제적·시간적으로 자유로운 삶뿐만 아니라 마음의 자유를 뺏고 특정한 경험에 나를 구속하고 있었다. 지금은 내가 쉬고 싶을 때 쉬고, 그만두고 싶을 때 그만둘 수 있다.
블로그, 유튜브, 오디오 방송, 건강·에니어그램 독서모임 등 오래 지속하던 것들을 많이 내려놓았다. 매일·매주 해야 한다는 집착에서 벗어났다. 내가 필요할 때 언제든 다시 할 수 있다. 꾸준히 하던 것들 중 여전히 지속하고 있는 것도 있다. 미래에 관한 불안함에서 현존의 힘을 길러준 감사일기나 일상에서 나답게 살아갈 힘을 유지 시켜주는 마음공부를 위한 미라클 독서모임, 나처럼 원씽을 찾아가는 독자와 나를 위해 매월 발행하고 있는 원씽브릿지가 현재 지속하고 있는 것들이다.
“왜 윤이만 챙기는데? 생일 축하한다는 문자도 안 해주고!”
이 글을 쓰게 된 계기가 된 첫째 아이의 한 마디이다. 아이가 눈 뜨자마자 안아주며 생일 축하 인사를 했고, 동생이 갑자기 열이 나 걱정되던 와중에도 아이 생일 밥상을 챙기느라 바빴는데 가족 채팅방에 아빠처럼 ‘생일 축하한다’는 메시지를 남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하루 종일 서운했던 마음을 나에게 터트렸다. 동생보다 더 많이 안아주고 예민해서 더 신경 쓰는데도 아이는 동생과 비교하며 자기를 덜 사랑한다고 느낀다. 자기보다 덜 안아주고, 덜 챙기는데도 항상 자신 있고 “엄마, 아빠, 언니도 좋지만 내가 제일 좋아!”라고 말하는 동생과 참 다르다.
내가 아이를 아무리 많이 안아주고 사랑한다고 말해도 정작 아이 스스로 자신을 좋아하지 못하면 다른 사람이 그러지 못하는 부분만 본다. 하지만 스스로 자기 자신을 좋아한다면 다른 사람으로부터 매 순간 관심받지 못하더라도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내가 나를 좋아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고, 다른 사람이 그렇게 나를 대해주는 부분을 보며 힘낼 수 있다. 그늘이 드리워진 그림자 대신 고개를 돌려 나를 밝게 비추는 햇살을 바라보며 즐겁게 살아갈 수 있다. 혹은 뜨거운 여름에 그림자가 주는 시원함을 누리듯 외롭고 힘든 시간을 나를 성장시키는 시간으로 만들 수도 있다.
내가 인생에서 진정으로 바라는 것?
애덤 스미스가 말하는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나를 인정하고 소중하게 여기며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즐거워하는 것은 참으로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앞서 내가 나에게 관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자신을 좋아하며 나를 존중하는 삶을 살고 싶다. 그런 삶을 살 수 있기를 나에게도, 아이에게도 바란다.
애덤 스미스의 문장을 바꾸어 나는,
내가 나 자신을 좋아하고, 존경하고, 자신에게 관심을 두기를
내가 나를 인정하고, 칭찬하고, 소중하게 여기길
내가 나와 함께 있기를 원하고, 내가 나와 함께 있을 때 즐거워하기를 원한다.
2023년 요즘 난?
나의 글을 쓰고 내 강의를 위해 준비하며 내 몸과 마음이 쉴 수 있는 휴식을 취하느라 다른 사람 강의는 들을 시간이 없다. 미래에 살아남기 위해 필요하다는 강의들이 나를 유혹하지만 내가 나아가는 길에 그것이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인지 구별하게 된다. 다양한 강의를 듣는 것보다 ‘나’를 만날 수 있는 명상이나 여행, 글 쓰는 시간이 훨씬 더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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