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왜 이렇게 자기를 좋아하지?”
8년 연애, 결혼 12년 차인 남편이 나를 포옹하며 하는 말이다.
아홉 살, 열한 살 손녀에게 “엄마 아빠는 서로 안 싸우냐?” 장난스럽게 묻는 할머니 질문에 “아뇨~ 안 싸워요!”라고 아이들이 답했다고 한다. 아이들에게 그런 모습 보이지 않아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엄마 아빠에게 “뽀뽀해! 뽀뽀해!” 하며 파파라치라도 된 듯, 손으로 카메라 모양을 만들어 찰칵찰칵 찍는 시늉을 하는 아이들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원한다. 행복한 삶을 위해 ‘혼자’ 사는 삶을 꿈꾸진 않는다. 결혼이든 연애든, 친구들과 어울려 지내든, 봉사하는 삶이든 우리는 어느 ‘누군가’와 함께 하기를 희망한다.
사람이 태어나서 처음 맺는 인간관계는 일반적으로 가정에서 부모님과의 관계로 이루어진다. 태어나자마자 부모님과 함께 지내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무의식에선 부모님이 누구인지 알고 싶어 하고 그분들의 관계를 상상하거나 알아가며 자신의 미래도 그려 나간다.
모두가 행복한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신도 그런 관계를 꿈꿀 수 있다면 좋겠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행복해 보이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며 자신은 결혼하지 않겠다거나 그 반대의 모습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나는 후자에 가깝다.
자식이 태어나기 전엔 잉꼬부부라는 소리를 들으셨다는데 나중엔 자식들 때문에 마지못해 산다고 말씀하셨던 엄마다. 그런 엄마를 보며 어떻게 하면 행복한 결혼생활을 할 수 있을까? 어릴 때부터 그 방법이 궁금했다.
그러던 중 우연히 접한 <부부클리닉 사랑과 전쟁>을 통해 부부간에 생길 수 있는 현실 속 문제를 알게 되었다. 그리고 실제 경험을 통해 행복한 결혼생활을 위한 나만의 원칙이 생겼고, 그 생각은 지금도 유효하다. 내 딸들에게도 전하고픈 나의 원칙을 소개한다.
- 부잣집 며느리보다 발전 가능성 있는 성실한 사람을 만난다.
남자 측 부모님이 서울에 아파트 한 채는 마련해주길 바라는 것처럼 부잣집 며느리를 꿈꾸지 않았다. 부잣집 며느리 자리를 감당할 만큼 부모님이 부유하지 않았고, 그 부담감을 견딜 만큼 내 정신력도 강하지 못했다.
부모님이나 형제자매와 같이 배우자의 가까운 관계가 부부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다. 결혼은 연애와 다르게 두 사람만의 관계가 아니라 두 집안의 만남이기 때문이다. 드라마를 보면 상대적으로 가난한 여자 측에 부유한 남자 측은 그들 기준에 맞춰 물질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곤 한다. 그 기준이 충족되지 못하면 여자나 여자 집안을 무시하는 태도로 이어진다. 장기적으로 두 사람, 두 집안 간 감정의 골이 깊어지게 된다. 남자 혼자 여자에게 아무리 잘해도 계속 스트레스를 주는 남자 측 가족이 있다면, 그것을 평생 감당하기는 어렵다.
어느 한쪽이 경제적으로 월등히 부유하다고 해서 모두가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양쪽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는 것이 서로의 문화를 더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쉬운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와 배우자, 각자의 능력이 더 중요했다. ‘취업 대신 결혼’이라는 말도 있지만, 남자의 경제력에 의존하지도 않았다. 두 사람이 마음 맞춰 함께 경제력을 키우는 것이 더 중요했다. 그것이 부잣집 며느리를 꿈꾸기보다 문제해결 능력이 있고, 발전 가능성 있는 성실한 사람을 선호한 이유이다.
- 남자가 여자를 좀 더 사랑할 때 둘 사이에 균형을 이룬다.
관심과 사랑의 시작이 누가 먼저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 남자가 여자를 조금이라도 더 사랑하는 것이 행복한 결혼생활을 지속하기 쉽다. 성차별적인 생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체적, 사회적으로 남자가 여자보다 현실을 살아가기에 좀 더 유리한 경우가 많다. 그렇다 보니 상대를 향한 사랑의 크기가 1만큼이라도 남자가 더 커야 상대적으로 약자인 여자가 남자와 힘의 균형을 맞추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잡아놓은 물고기에게는 먹이를 주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다. 보통 여자보다 남자들이 하는 말이다. 남자들은 관계가 확실할수록 더 챙겨줄 필요 없다는 뜻으로 하는 말이겠지만, 먹이를 주지 않으면 물고기는 죽거나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다. 식용으로 잡은 물고기라면 먹이를 주지 않아도 되겠지만 기쁨을 함께 누리며 오래 같이 살기를 바란다면 관심과 사랑으로 잘 보살펴야 할 것이다. 후자는 남자가 여자를 좀 더 사랑할 때 가능하다고 본다.
-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워야 한다.
“뭐가 그렇게 재밌어? 네 웃음소리밖에 안 들린다.” 남편과 연애하기 전, 당시 선배였던 남편과 이야기를 나누던 나에게 친구들이 한 말이다. 소리만 안 냈을 뿐 같이 웃고 있었는데 혼자 그 말을 들으니 억울했지만, 그때 알았다. ‘내가 이 사람하고 같이 있으면 즐겁구나!‘
사랑받으면 행복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내가 좋아하는 마음 없이 시작했던 첫 연애는 즐겁지 않았다. 그래서 그다음 연애는 서로 좋아하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꼭 그렇지도 않았다. 서로 좋아해서 연애를 시작했지만 잘 보이고 싶어서 솔직한 모습을 보이지 못하자 결국 그 관계도 불편했다.
그 경험으로 이성으로 느끼는 호기심과 애정보다, 함께 있으면 편안하고 즐거운 사람을 만나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하여 지금의 남편을 만나 8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 편안하고 즐거우면 더 많이 웃게 되고 웃음은 사랑을 키우고 더 돈독히 해주었다.
- 상대의 단점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나는 청소, 정리 정돈을 자주 하지 않는다. 한번 시작하면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가서 차라리 최대한 어질지 않기를 택한다. 남편은 내 단점을 알고 결혼했다. 그는 나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자신이 먼저 청소를 시작한다. 다행히 청소하는 남편 옆에서 드러누워 놀고먹을 만큼 비양심적이진 않다. 남편이 청소기를 밀고, 밀대로 방을 닦으면 나는 요리하든, 정리하든 다른 집안일을 한다.
상대의 단점을 바꾸기는 어렵지만 보완해 줄 수는 있다. 그래서 결혼 전 상대의 단점을 알았다면 ‘내가 단점을 고쳐보겠어!’하고 자신하지 말자. ‘그건 내가 보완할 수 있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둘 사이의 관계는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
- 사랑은 서로 표현하고 주고받아야 한다.
남자가 여자를 좀 더 사랑할 때 둘 사이에 균형을 이룬다고 앞에서 말했다. 그 말이 여자는 남자를 전혀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받기만 해도 된다는 것이 아니다. 물이 한 방향으로 흐르고 고이기만 하면 썩는다. 물이 순환하는 것처럼 사랑의 순환도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자신을 아껴주고 잘 대해주는 사람에게 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연애 시절, 남편은 생각지도 않은 이벤트로 받는 즐거움을 주곤 했다. 그런 남편을 위해 초콜릿을 만들고, 십자수 주차 쿠션을 만들어 선물했다. 뭔가를 만드는 데 관심 없던 당시의 나를 움직이게 만든 것이 사랑이다.
받는 것을 기대하고 선물한 것이 아니더라도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똑같기 때문이다. 마음도, 물질도 일방적으로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것이 아니라 주고받는 것이 사랑을 지속하는 비결이다. 단, 오해하지 마라. 물질을 받았다고 꼭 물질로만 돌려줘야 하는 것은 아니다. ‘감사’와 ‘사랑’은 물질, 언어, 비언어적으로도 표현할 수 있다. 그 어떤 방법이든 서로 주고받으며 순환하는 것이 중요하다.
기혼자들에게.
앞의 5가지 전략은 미혼인 독자들에게 더 도움이 될 듯하다. 나의 평온한 결혼생활에 ‘넌 결혼을 잘해서 그래!’라고 말했던 지인들 말에 단순히 내가 운이 좋았기 때문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었다. 오래전부터 행복한 결혼을 위해 고민했고 시행착오를 겪으며 생각을 바꿔온 덕분에 배우자 운도 따라온 것이라 말하고 싶었다.
이미 나와는 다른 선택으로 결혼하여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면 이 글을 더 이상 읽을 필요 없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아직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은 남아있다. 상대를 변화시키려 하지 말고 내가 변하면 된다. 내 대답이 기대에 못 미쳤다면 미안하지만, 사실이 그렇다.
흔히 결혼하면 사람이 변한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사람은 그대로인데 콩깍지가 끼여 제대로 보지 못했거나 상황이 바뀌니 당시엔 장점으로 보였던 것이 단점으로 보이는 경우가 많다. 상대가 바뀌었다기보다 내 상황과 생각이 바뀐 것이다. 솔직히 인정하고 바뀐 내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한다면 그 생각을 바꿔보자.
남편은 결혼 전에도 주말 아침이면 조기 축구 모임에 갔었다. 그때는 주말에 일찍 일어나 운동가는 모습이 좋았다. 그런데 결혼하고 어린아이를 돌보는 상황에선 주말 아침 10시, 11시 무렵에나 들어오는 것이 썩 달갑지 않았다. 그러나 운동 안 하니 체력이 달려서 애 보기 힘들다는 말을 듣고 그 시간을 존중하기로 했다.
맞벌이하는 여자는 주말에도 육아와 집안일로 쉬지 못하고 일하는데 남편은 주말이라고 드러누워 늘어지게 잠을 자거나 운동한다며 홀로 밖으로 나가면 얄미울 수 있다. 그럴 때면 혼자 고생은 다 하는 것 같아 억울한 마음이 들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행동에는 긍정적인 의도가 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되는 그 행동의 긍정적인 의도를 생각해 보자.
남편은 평일에 받은 스트레스를 풀고 부족한 잠을 보충하여 다음 한 주도 힘내서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있을 것이다. 아이들과 더 잘 놀아주기 위해 체력 관리의 필요성을 느끼고 운동하러 나갈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자신의 건강관리, 체력 관리 못 하는 남편보다 자기 관리하는 남편이 훨씬 더 멋지고 감사한 일이다.
그렇다고 혼자만 고생하라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해 시간을 보내는 남편을 존중해 주고 여자 또한 그런 시간이 필요하다면 당당히 남편에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남자도, 여자도 사람이니 자신의 건강관리를 위한 시간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혼자 스트레스 받으며 열 내지 말고, 솔직하게 대화하고 서로에게 필요한 시간을 존중해 주자.
남편의 시간을 존중해 주니 남편은 나에게 고맙다고 한다. 다른 아내들은 남편이 혼자 나가는 것을 싫어하거나 못 가게 한다고 한다. 그런데 나는 잘 다녀오라고 말해주니 고맙다는 것이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며 난 한 가지를 더 배운다. 상대가 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고 고마움을 표현할 줄 아는 것! 그런 남편을 본받아 남편이 나에게 배려해 주는 시간도 고맙다고 나 역시 표현하게 된다.
기억하자. 사랑에서 비롯되는 감사도 서로 표현하고 주고받아야 한다. 그것이 8년 연애, 결혼 12년 차의 행복한 부부로 사는 비결이다. 아주 단순하지 않은가?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행복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