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나도 맑고 푸른 바다 한가운데에서 앤디는 하늘을 올려다본다. 이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따스한 햇살과 더불어 산들바람이 그의 얼굴을 가볍게 스친다. 수영을 못해서 그렇게도 물을 싫어했던 그가 배에 누워 있다니, 그동안 생각한 유람선 여행은 아니지만, 가족과 함께 여행한다는 게 꿈만 같았다. ‘해외에 1년에 1번씩 나가 보기’를 기록했는데, 이젠 한국을 떠나 1년간 바다를 떠다니고 있다. 그의 인생을 바꾼 여행은 어디서부터 시작된 걸까?
여행을 떠나기 몇 년 전에 무척이나 바쁜 일상을 살았다. 문득 영국 방문이 떠오른다. ‘세계의 청소년과 청년들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강연하기’가 이루어진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생각하는 세계시민의식은 단순히 온 인류와 세계를 위한다는 것이 아닌 ‘자기 존중’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이 부분은 사랑과도 연결되는데요. 우울증 환자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들에게는 이상과 현실 사이의 격차가 너무 크게 느껴져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이 진정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진정 변화를 원하는지? 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것인지?’에 대한 성찰과 직면이 필요한데요. 솔직하게 말해볼까요? ‘내 꼴 보기- 주제 파악을 해라!’가 먼저입니다. (청중 웃음) 내가 선택하고 실행할 수 있는 자기 통제권이 늘어나게 되면 자존감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이쯤에서 질문 하나 드릴까요? 여러분이 생각하는 사랑의 정의는 무엇인가요? 혁신은 어디서부터 시작되는 걸까요?”
앤디는 잠시 멈추고서 청소년과 청년들을 바라보았다. 영국 런던에서 열린 세계시민교육 & 사회혁신 포럼에서 강의를 진행 중이던 그는 잠시 눈을 감고 생각에 잠겼다. 강의가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
5초간의 정적 뒤에 세미나실에서 갑자기 방송이 하나 흘러나왔다.
“강의실에 계신 앤디 마커스님, 앤디 마커스님 강의 중 죄송하지만, 긴급 전화가 와 있습니다. 지금 바로 사무국으로 오시겠습니까?”
평소에 중요한 일을 할 때는 전화기를 아예 꺼 놓는 습관을 지닌 그에게 자주 있는 일이었다.
“제게 급한 전화가 와서 죄송하지만, 강의는 여기서 마칠게요. 아! 제가 드린 질문은 여러분에게 숙제로 남겨둘게요. 질문이 있으시면 화면에 보이는 메일이나 저희가 운영하는 한국의 ‘러브미타운’ 홈페이지에 질문을 남겨 주세요.”
“선생님, 선생님!” 많은 청년이나 청소년들이 질문하고 싶어서 일어섰다. 앤디는 손을 흔들며 인사한 뒤 급하게 앞문을 열고 사무국으로 종종걸음을 재촉했다. 뭔가 새로운 일이 터질 것 같다는 기대에 그는 설레기도 했다.
문득 갑자기 길을 잘못 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만 여기 처음 왔는데 사무국이 어디 있더라?’ 지나가는 직원에게 길을 물은 뒤 간신히 사무국에 도착해서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앤디 선생님이시죠?”
“네, 그런데요?”
“저희는 공기 정화 시스템을 연구하는 에어클린이라는 회사인데요. R재단에서 시작하려는 사업 공모에 참여하고자 연락드렸습니다. 기획 담당이 앤디 선생님으로 되어 있으시더라고요. 저희 팀원들이 런던에 와 있습니다. 만나서 상의드리고 싶은 게 있는데, 오늘 혹시 가능할까요?”
“아! 그러시군요? 어디에서 뵐까요?”
세계의 공기가 오염되었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하던 중 미세먼지와 공기 오염을 줄이는 장치 개발을 시작하려는 앤디는 무척이나 기뻤다. ‘사람들의 삶에 도움이 되는 사업하기’를 적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 인류를 위해서 도울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더 생긴 것이다. 공기 오염과 바이러스 등으로 인해서 호흡기 질환과 여러 문제가 발생하자 이전부터 생각해 왔던 것을 실행한 것이다.
그 전부터 많은 일이 있었다. 30대 초반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장학재단과 교육센터를 세우자’라고 드림 노트에 적은 적이 있었는데, 소년·소녀 가장 100명에게 장학금을 전달할 수 있어서 감사했다. 서울의 스타트업 아카데미에서 만난 J 대표가 운영하는 사회적 기업에서는, 장애인과 정상인도 아니지만, 최근 3년 안에 제대로 일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과 우울증 환자 50명을 고용할 수 있었다.
2028년 세워진 러브미 타운은 ‘나다운 하루’라는 목표를 가지고, 온전한 나를 찾는 체계적인 프로그램으로 다양한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21년에 ‘러브미’라는 단어가 앤디의 머릿속에 꽂히면서, 그는 ‘나’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기 시작했다. 모든 사람이 함께 행복하고, 전 지구적으로 더 나은 세상이 만들어지려면 ‘러브미’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일어설 힘이 없는 ‘그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와 함께 하는 러브미 운동 이야기는 2년 전 책으로 출간이 되었다. 그 책은 전 세계에 있는 공동체와 단체에 영향을 주었고, 16개 국어로 번역되어 80개 나라에 전해졌다. 현재 매년 열리는 ‘러브하트 캠프’에는 30여개 국의 아이들과 청소년, 청년들이 참여하고 있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자신에게 놓인 환경에 갇혀서, 마음의 상처로 힘든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어린아이들에게는 무상으로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이제는 부모들, 회사의 대표, 각 단체의 장이나 리더들도 자신의 인생을 찾기 위해 러브미 타운을 찾고 있다. 죽음과 질병이 퍼지며, 생명의 소중함이 사라지는 시대에 러브미 운동은 세상에 밝은 빛을 비추고 있었다.
러브미 타운에는 자신을 찾고서 꿈과 희망을 나누어주는 선생님들이 있다. 러브미 타운에는 직책이나 계급, 서열에 구분이 없어서 마을장을 제외하고 모두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다. 그중에는 기획과 마케팅, 기술을 담당하는 P 선생님부터, 부드러움과 편안함을 주는 R 선생님까지 다양한 직종에 있던 분들이 회사를 그만두고 도움을 주고 계신다. 환경과 건강을 생각하는 유기농 먹거리 식당은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인기다. 즉석에서 요리하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풍성한 볼거리가 제공되어, 어른들과 아이들이 모두 좋아한다.
23년 4월 우연히 만나게 된 서울의 도시락 카페의 여성 대표로부터 ‘나답게, 자기답게 살았으면 좋겠어.’라는 말을 듣고서 그는 무척이나 하기 싫은 주제 파악을 해야만 했다. 삶을 자포자기하고, 깊은 우울증에 빠진 채 무기력하고 어지럽고, 온 힘이 빠지던 시절에, 그는 힘겹지만, 이제부터 과거로 돌아가 자신의 삶을 정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멍하게 바라보던 강물은 참으로 야속하게도 변함없이 잔잔히 흐르고 있었다. 10초만 걸으면 호수에 빠져 죽을 수도 있었던 그때, 그는 왜 자신이 제자리인지 문제의 실체를 알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10년 이상 애써 외면했던 질문을 드디어 자신에게 던졌다. ‘도대체 언제,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앤디는 자신이 피폐하게 된 것이, 병든 몸 때문이라는 생각이 많았다. 그런데 몸의 고통이 조금씩 줄어드는데도, 여전히 의욕이 없고, 무기력하고, 하기 싫은 자신의 모습을 직면해야 했다. 그는 왜 자신의 인생이 이렇게까지 됐는지 알기 위해, 잔인하게 계속 과거로, 과거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는 프랑스에서 사업을 하는 분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그 기업가는 앤디에게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체면과 자존심을 버리라고 했다. 현재의 나를 정확히 볼 수 있어야 하며, 나를 내려놓고 아주 작은 것부터 시작하는 용기를 가지라고 조언해 주었다.
모든 것을 잃은 것 같은가?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고? 밑바닥에 내려갔는데, 또 절망의 밑바닥으로 내려가는 듯했다. 닿는 땅이 없이, 끝없이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기업가는 살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무언가를 새로 시작할 조건은 충분하다고 말했다. 그 말은 앤디에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다.
너무나 많은 상처와 아픔 속에 앤디의 마음은 무너져 있었다. 자신의 마음이 병들었다는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그에게는 지난 10년 동안 자신을 도와주고자 했던 사람들이 주변에 있었다. 그것은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런데 자신이 자기 연민과 학대 속에서 두 발로 일어서지 못함을 본 것이다. 뭘 더 바란 것일까? 제대로 된 공감과 위로? 함께 울어주고 아파해 주는 것? 우울과 불안 속에서, 몸이 말을 듣지 않는 현실에서 지금이라도 실체를 찾아야 했다. 나에 대해서 온전히 슬퍼하지 못했던 걸까? 상처받은 어린아이로 슬픈 감정 속에 갇혀 그것을 즐기고 있는 건 아닌가? 가슴이 쪼이고, 제대로 잠 못 드는 밤이 계속 이어져 갔다. 그는 그래도 두 발로 일어서는 연습을 해야만 했다. 다시 어린 아기가 되는 듯했다.
갑자기 그의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손길이 느껴졌다. 앤디의 얼굴에 저절로 웃음이 번져갔다. 아내가 조용히 와서 말을 걸었다.
“여보, 무슨 생각 해요?”
“응? 왔어? 잠깐 꿈을 꿨나 봐.”
“꿈이요? 또 이상한 생각 하는 건 아니죠? 공책에 적고 다른 일 꾸미는 건 아니에요?”
“글쎄, 그냥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하루에 대해서 생각했는데, 그게 이미 이루어진 것 같은데?”
“그래요? 여보, 또 전화기 꺼 놓은 거죠? 러브미 타운에서 전화가 왔어요. 마을장님이 꼭 할 얘기가 있대요. 얼른 받아 보세요.”
“엥? 전화? 아~ 받기 싫은데, 마을장님이 빨리 돌아오라고 하는 거 아닌가?” “여보~ 마을장님은 당신을 사랑해서 그러는 거예요.”
“하하, 부담스러움~.”
당신이 누구를 알고 있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는 알고 싶지 않다. 당신이 몇 살인지, 돈이 있는지 없는지도, 성별이나 학력이 어떠한지도 내겐 중요하지 않다. 다만 당신이 슬픔과 절망의 밤을 지새운 뒤 지치고 뼛속까지 멍든 밤이 지난 뒤 자리를 떨쳐 일어날 수 있는가를 알고 싶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이 어려운 일을 해내기로 결심한다면 박수를 보낼 것이다. 당신이 홀로 일어서기 전에도, 혼자서 쪼그리고 앉아 울고 있을 때도, 무가치하다고 여길 때도 앤디는 ‘사랑해, 고마워’라는 메시지를 보낼 것이다. 다른 사람들처럼 그냥 이러니저러니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당신이 두려워하는 것을 같이 두려워하고, 당신이 아파하는 것을 함께 아파할 것이다. 사랑할 것이다. 그러면 당신의 새로운 여행이 시작될 것을 믿기에. |